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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약사의 국제보건 이야기] 무서운 속도의 변화 – 르완다의 꿈 (김은미)

[대통령선거 선전물]
불과 100일 정도의 기간에 약 80만 명이 희생되었던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고작 20여 년이 지난 르완다의 모습은 기적에 가깝다고 느낄 것이다. WHO 아프리카 지역사무소의 컨설턴트 자격으로 처음으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도착한 날은 2017 7 15일이었다. “천 개의 언덕이라는 나라답게 키갈리는 완만한 언덕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평화로워 보이는 소도시. 5개월간 지속된다는 건기의 중간을 지나고 있어서여서 그런지 붉은 황토 흙의 먼지와 키만 우뚝 자란 나무들의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르완다 애국 전선(RPF)을 이끌었던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은 내전을 성공적으로 종식시키고,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내가 있는 동안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내가 묵던 호텔에 선거 당시 다소 한산했는데, 선거가 끝나자 투숙객도 늘고 행사도 많아서, 여전히 아프리카에는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의 치안 불안에 대한 우려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 실감되었다. 

처음 공항에서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긴 전당대회 참여 버스의 행렬을 보았었는데 RPF를 상징하는 3색기 (빨강, 흰색, 파랑)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도로마다 삼색을 상징하는 장식들이 마치 적수가 될 후보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폴 카가메의 15년간의 장기 집권 동안에, 국가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는 등 많은 긍정적인 변화에 지지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라고 했다. 게다가 르완다 대학살의 공포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경제적 발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체제의 안정이라는 말을 들으니 이해는 갔다.  

또한, 내가 방문했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서 도로가 매우 잘 정비되어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대학살로 인한 내전 종식 후 재판과정에서 자백을 하고 후회를 뉘우치는 전범들에 한해서는 지역사회의 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여 감옥살이를 대신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공포정권에 가까운 강력한 정부 탓에 부작용도 많아서 거리의 잡상인들이나 걸인을 정식 재판절차 없이 감옥에 보내버리는 등 인권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 잡상인이나 걸인들도 매우 드물었다.

[키갈리 대학살 기념관]
완다는 커피, 바나나 등 농업이 주요 산업이고 인구 천3백만 정도의 작은 국가로 콩고, 브룬디, 탄자니아, 우간다 등 4개 국가로 둘러싸여 있다. 주로, 아프리카 동쪽 지역의 주요 항구인 탄자니아의 다르에스 살렘을 통해 주로 물자를 수입하다 보니 물가는 주변국가에 비해 비싸다. 도시를 벗어난 지역을 달리다 보면 도로에서 40시간 이상을 달려 물자를 수송하는 큰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폴 카가메 정부는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와 비교적 안전한 국가라는 장점을 이용하여 최근 동아프리카지역 국가들을 대상으로 주요 무역박람회나 국제회의 등을 유치하여 경제발전을 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한국의 코이카를 통해서 지원하고 있는 IT 인프라 구축도 이러한 경제발전의 근간을 확보하고 하는 주요 사업의 일환이었다.

나의 업무는 르완다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설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돕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폴 카가메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 속에 보건부에서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동아프리카 지역국가의 의약품 규제조화 (East African Medicines Registration Harmonization Initiative) 노력은 타 아프리카 지역경제협력기구에 비해 매우 활발하여서, 독립된 의약품규제당국을 갖추고 있지 못한 르완다로서는 규모나 실제 규제이행 부분에서 이웃 국가들에 비해 매우 뒤쳐진 편이었다. 따라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선두 국가의 패권을 쥐고 싶어하는 르완다의 입장에서는 옆나라인 탄자니아나 우간다의 식약청의 선진화가 매우 부러웠으리라 생각되었다. 실재로 르완다 식약청의 새로운 조직도와 5년 로드맵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보건부 관리들이 탄자니아나 우간다의 식약청 모델을 많이 인용하면서 더 나은 식약청을 설계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였다.

[보건부 앞]
기존 르완다의 의약품, 식품, 의료기기, 화장품 및 기타 의약외품 등의 규제는 보건부의 주무 부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부 기관에서 제각기 관리하거나 아니면 아예 관리조차 되고 있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다. 따라서 여러 기관에 퍼져있는 업무를 한곳에 모으고,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는 등의 대수술이 필요하였다. 어느 부서가 필요하고, 몇 명이나 필요하며 어떤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2주간의 열띤 회의 끝에, 르완다 식약청 조직도의 초안을 완성하여 보건부 장관과의 미팅을 잘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각 유관 기관들과 학계 인사들을 초대하여 공청회를 가지는 자리에서 또 한 번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주요 업무과 이전될 것을 우려하는 타 기관들에 비해 학계에서는 비교적 건설적이고 객관적인 의견과 격려가 이어졌다. 매일 매일이 전쟁터 같아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면 뻗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르완다의 관리들은 내가 만났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보건부 관리들과 다르게 뭔가 잔뜩 군기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해진 시간 내에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나를 쪼아(?)댔건 거 같다. 강력한 르완다 정부의 분위기가 반영된 탓인지, 윗선에서 시킨 일을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질적인 면에서도 이웃국가들과 비교해서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느껴졌다.

해외 유학파들이 대우받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매우 활발한 분위기에는 르완다의 대학살도 영향을 크게 끼쳤다고 한다. 대학살 당시에 가장들이 많은 죽임을 당했고, 살아 남은 여자들이 집안의 가장이 되면서 조카 등 고아가 된 친척들도 거두어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정부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지지하고 교육을 확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건부장관도 여성이었고, 르완다 WHO 사무소의 내 업무 담당자도 여성이었다. 폴 카가메 대통령이 우간다로 난민 갔었던 투치족 출신이라 불어를 전혀 할 수 없어, 국가 공용어에 영어를 추가한 정책도 르완다 국민들의 유학과 해외진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 영향으로 르완다의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벨기에 등 다른 나라에 진출하여 돌아오지 않는 등, 의료인의 두뇌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르완다의 새로운 식약청 설립에 5년간 필요한 인력은 350~400명 정도로 추산이 되었고, 이에 맞춰 기술인력개발과 교육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이어졌다. 또한, 의약품, 식품, 의료기기, 의약외품 및 기타 생활용 화확제품의 규제를 담당하게 될 각 부서의 업무 내용과 역할을 작성하고, 재정부처와 인원 충원을 위한 재정확보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단지 인원만 충원하는 것으로는 식약청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술 자문이 필요한 분야를 구체적으로 선정하였다. 

그 일환으로 코이카, USAID 파트너 등과 회의를 하면서 점점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 르완다의 약대 학장과의 회의에서 현재 Quality Assurance Quality Control 분야에 국한되어 있는 석사과정을 의약품 식품 규제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것도 논의를 하였다. 한 나라의 식약청을 설립하고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 건물과 직원 확보 이외에도 국립 의약품 식품 검정시험기관의 설립도 필요하고, 고도의 전문성의 요구되는 의약품 허가 서류를 검토할 전문가의 양성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기술 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개발협력 파트너와 WHO 담당자 와의 심도 깊은 회의가 매일같이 이어졌다. 르완다 식약청 발전 5개년 로드맵을 현실성 없는 청사진만으로 채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보건부 앞 필자]
현재 Global Fund USAID등에서 직접 조달하여 보급하고 있는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의 주요 질환의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르완다에서의 의약품의 사전 검사 및 허가제도는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유통되고 있는 의약품의 품질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고, 아프리카 많은 지역에서 가짜 의약품 등 불량의약품의 비율이 30~40%에 달하고 있는 것을 참고한다면 르완다의 사정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르완다 정부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는 르완다 식약청의 설립이 르완다 의료보건의 질 향상에 미칠 영향은 막대하다.

아프리카의 각국에서는 보건부 산하 혹은 독자적인 기관으로서의 식품의약품규제당국을 설립하거나 기존 기관을 학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지난 수십년 동안 중요성은 강조되었으나 그 실행은 지지부진했던 과거에 반하여 최근 5~6년간의 발전을 눈부시다. 물론 Gates & Melinda Foundation이나 World Bank, WHO 등의 경제적, 기술적 지원의 역할도 크지만, 아프리카에 불고 있는 해내고자 하는 열망과 국가별 경쟁심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7~8년전 제네바에서 열린 WHO World Health Assembly에 참석했을 때,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식약청 고위관리가 보여준 본인 자동차에 총격을 받아 뒷창문 유리에 구멍이 뜷린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었다. 그 여자 관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국의 가짜약을 찾아내고 없애겠다고 증언했었다. 

르완다의 경우,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식품의약품의 규제를 강화하고자 하고 있고 더 나아가 자국내에 제대로 된 의약품 생산시설을 갖추는 꿈을 꾸고 있어서 그 미래가 정말 기대된다. 

르완다 보건부의 요청으로 향후 6개월간 WHO 컨설턴트로서 르완다 식약청 설립 준비 과정을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많은 고민 끝에 수립한 로드맵과 조직도 및 인력충원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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